12신조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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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 헌법 제1편 12신조-강해.pdf

  

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 헌법 제1편 12신조


I. 서언


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는 아래 기록한 열 두 조목을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모든 성도로 하여금 승인케 할 신조로 한다. 이것은 성경과 그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성경 대・소요리문답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한다.1)


12신조는 서언과 본문과 승인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12신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언에서는 이 신조의 성격을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는 아래 기록한 열 두 조목을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모든 성도로 하여금 승인케 할 신조로 한다.”

둘째, “이것은 성경과 그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성경 대・소요리문답을 요약한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한다.”


1. 신조의 제정 목적


이 신조를 작성한 자는 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요 그 내용은 12조목입니다. 이 신조를 제정한 목적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2) 모든 성도로 하여금 승인케 할 신조로 삼기 위함입니다. 신조(信條)가 무엇입니까? 신앙의 조목(條目)입니다. 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가 믿는 신앙의 조목입니다. 그 조목을 12개 항목으로 요약한 것이 12신조입니다. 승인(承認)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12개의 신앙의 조목을 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에 속한 모든 목사, 장로, 집사,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마땅히 믿어야 할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하려고 제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수직 장립 서약에는 이 12신조를 승인하겠느냐는 조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3)


2. 신조의 원천(源泉)


12신조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성경입니다. 12신조는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신조의 어휘와 문장 표현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사상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그래서 비록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진 못하지만 세계한인예수교장로회에 속한 모든 목사들과 성도들에게는 성경에 종속된 권위를 갖습니다. 따라서 이 권위에 승복해야 합니다.

12신조의 또 다른 원천이 있는데, 그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성경 대・소요리문답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1647년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작성한 것인데,4)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이를 본교단의 신앙고백서로 채택했고 우리도 그 결정에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채택한 이유는 이 신앙고백서와 문답들이 성경을 밝히 해석한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12신조는 이것들의 정신을 압축하고 요약한 것입니다.


3. 신조의 교육


본교단이 12신조를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의 정신을 잘 요약한 것으로 승인하여 채택하였다면 마땅히 이를 본교단 신학교나 지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지금 노회 고시위원회에서 12신조를 교육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안수직 시취(試取)를 위해서만 아니라 평소에도 교회에서 신조를 가르쳐야 합니다. 상대주의와 혼합주의와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부인하는 새신학으로 오염된 현금의 신학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교회에서 신조와 요리문답의 교육을 다시 부흥시켜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어 있는 것입니다. 설교만으로는 이 높은 불신앙의 파고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교리 교육의 방파제를 높이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도적 신앙을 계승할 수 있고 설령 파도에 휩쓸려 간다 하더라도 최소한 구명보트가 올 때까지라도 헤엄을 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II. 제1조


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제1조는 성경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제1조에서 성경의 성격을 규정한 것은 성경이 모든 신조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나머지 모든 신조들의 색깔이 결정됩니다. 성경관이 신학을 좌우합니다. 왜냐하면 신학의 주원천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정경 즉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교회가 승복한 성경의 목록은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 모두 66권입니다. 이 66권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아니, 이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2항에서는 그 66권의 목록을 일일이 적어놓았습니다.5) 66권이라는 그 숫자보다도 그 숫자 안에 들어 있는 책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66권의 책 가운데서 임의로 빼거나 더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입니다. 기록된 성경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하게 권위가 있는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2. 신행의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권위를 가지고 있고 그 권위는 성령님의 영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영감만이 기록상 오류를 막을 수 있고 무오(無誤)한 기록만이 권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의 권위는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교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권위에 의한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상의 권위만 아니라 규범상의 권위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법칙입니다. 유일의 법칙입니다. 정확한 법칙입니다. 무오한 법칙입니다. 어떻게 믿느냐(how to believe)와 어떻게 행하느냐(how to work)에 대한 유일의 표준입니다. 성경이 이 규범적 권위는 역사적 권위 즉 기록의 권위에서 나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행(信行)의 유일한 법칙이라 고백하는 것은 단지 선언적인 성질이 아니라 이 권위에 복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의 영감이 무오를 낳고 무오가 권위를 낳고 권위가 복종을 낳고 복종은 수혜(受惠)를 낳는다는 이 연결을 주목해야 합니다.


III. 제2조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니 오직 그에게만 경배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신이시니 자연히 계시고,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다. 다른 신이나 모든 물질과 구별되시며, 그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과 사랑하심이 무한하시며 변하지 아니하신다.


제2조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즉 완전하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유일성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 했습니다.6) 복 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십니다.7) 하나님만이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면 오직 그분만이 존귀와 영광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8) 하나님만이 신이라면 나머지는 다 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만이 신(神)의 신이시며 주의 주님이시라 했습니다.9)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라 했습니다.10) 상천하지에 하나님은 한분뿐임을 명심하라 했습니다.11) 기생 라합조차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나 외에는 신이 없다 선언하셨습니다.12)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신이 없다 하셨습니다.13) 하나님이 한 분뿐이시라면 경배는 오직 그분께만 드려야 합니다. 경배는 하나님의 독점물입니다.


2. 하나님의 영성


“하나님은 신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영(靈)이시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셨습니다.14)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온전하고 완전한 영이십니다. 영 외에 그 무엇도 섞인 것이 없으십니다. 비록 하나님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 삼위로 계시지만 세 존재가 합쳐서 한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완전히 순수하게 영적 존재이시며 따라서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물리적인 형체나 또는 영적 형체 소위 ‘영체’(靈體)라는 것도 없으십니다. 영(靈)이란 말은 어떤 형태도 없음을 전제로 하는데, 그 영에다 형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물리적 대상을 보는 것에만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우리들이 하나님이 순수한 영이시라는 이 개념을 충분히 납득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영이시면 그는 인격적입니다. 인격적이지 않으면 영(靈)이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겐 지정의(知情意)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의 편재성(遍在性)


하나님이 영이시면 아무 형체도 없으니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에나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계시고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다.”라고 했습니다. 시간과 관련된 하나님의 무한성을 영원성이라 한다면 공간과 관련된 하나님의 무한성은 편재성 또는 무변성(無邊性)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십니다.15)


4. 하나님의 거룩성


“다른 신이나 모든 물질과 구별되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별되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뜻입니다. 거룩의 기본적 개념이 ‘구별’이기 때입니다. 하나님은 존재가 구별되시고 그의 속성(완전성) 또한 구별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물질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창조하신 자는 물질과 구별되십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구별하지 않으면 범신론이 됩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초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물질을 만드셨으나 물질에 예속되지 않으시고 세상과 구별되시지만 동시에 천지에 충만하십니다. 초월하시면서 동시에 내재하신 분이십니다. 존재에서만 아니라 그의 완전성에서도 구별되십니다. 하나님은 죄와는 상관이 없으시고 도덕적으로 완전하시고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16)


5. 하나님의 무한성과 불변성


“그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과 사랑하심이 무한하시며 변하지 아니하신다.”라고 했습니다. “무한하시며 변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무한성과 불변성을 말합니다. 무한한 것은 변할 수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무한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무한하고 불변하십니까? 그의 ‘존재’가 무한하고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셨습니다. 영원부터 영원히 계셨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그의 존재가 무한하고 불변하시니까 자연히 그 존재와 관련된 속성 또한 무한하며 불변하십니다.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과 사랑하심”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속성 즉 완전하심인데, 그것들이 무한하시고 불변하십니다. 대저 그 사람이 어떠하면 그 행위도 그러하다 했습니다.17) 하나님의 존재가 무한하고 불변하시니 그의 행하심도 그러합니다.


IV. 제3조


하나님은 본체에 세 위가 계시니 성부, 성자, 성령이신데 이 세 위는 한 하나님이시다.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이 동등이시다.


제3조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이 본체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삼위는 인격이시나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십니다. 삼위가 일체(一體)가 되십니다. 삼위의 신비는 이 ‘일체’에 있습니다. 삼위가 존재의 위적 질서로는 성부가 첫째요 다음이 성자요 마지막이 성령이시지만 그 권능과 영광은 동등하십니다. 따라서 삼위는 어느 위에도 예속되거나 종속되지 않으십니다. 삼위는 서로 구분되시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비록 삼위일체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해서 이렇게 서술은 해 보지만 실은 인간 이해를 초월한 문제인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이성의 납득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과 성령님의 설득에 의해서 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V. 제4조


하나님께서 모든 유형물과 무형물을 그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사 보존하시고 주장하시나 결코 죄를 내신 이는 아니시다. 모든 것을 자기 뜻의 계획대로 행하시며 만유는 다 하나님의 착하시고 지혜롭고 거룩하신 목적을 성취하도록 역사하신다.


제4조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 즉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 즉 신지식(神知識)은 그의 존재와 사역을 통해서인데, 이 모든 지식들은 성경 계시에 의존합니다. 성경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참으로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작정과 창조와 섭리 이 세 가지입니다. 섭리(攝理)는 돌보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작정하신 대로 창조하시고 창조한 세계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유형물과 무형물을 그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은 우연히 생기거나 저절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 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게 유형이든 무형이든 모두 하나님에 의해서 생겼습니다.

그 방법은 ‘창조’의 방법입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초유(初有)의 일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그 무엇으로부터 만들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무(無)이지만 참으로 무에서 유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원인으로서 하나님의 의지(意志)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것이 아니라 유(有)에서 유(有)를 만든 것인데, 그 유(有)가 하나님의 의지(意志)입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상을 만들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것이 존재가 되는데, 이것이 곧 창조의 방식입니다. 이 창조의 방식에 의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존재를 명하시면 존재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빛이 있으라.” 명하시면 빛이 있어야 합니다. 달리 될 수가 없습니다. 거역할 수도 없습니다. 만상은 그의 입 기운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18)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그래서 존재와 사역에 있어서 독립적이시지만 모든 피조물은 의존적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존재도 활동도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를 계속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그게 피조물의 운명입니다.


2. 만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서 생겼는데, 특히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생겼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뜻의 계획대로 행하시며”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존재 원인(原因)은 하나님의 의지(意志)입니다. 왜 천지를 만드셨습니까? 그게 하나님의 의지 즉 뜻이기 때문입니다. 왜 온갖 종류의 식물과 동물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종류와 형태와 특징과 성질은 모두 하나님의 의지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의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19) 모든 것은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갑니다.20)


3. 하나님께서 만사를 섭리하신다


만물은 하나님의 의지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이 소원이 빚은 작품입니다. 그렇게 원하셔서 애써 만든 세상을 아무렇게나 방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만드신 세상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고 협력하십니다. 보존과 통치와 협력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섭리의 요소들입니다. 그래서 “보존하시고 주장하시나”라고 말씀하셨고 또 “만유는 다 하나님의 착하시고 지혜롭고 거룩하신 목적을 성취하도록 역사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을 보존하십니다.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잡으신다 했습니다.21) 하나님의 보존과 통치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또 “만유는 다 하나님의 착하시고 지혜롭고 거룩하신 목적을 성취하도록 역사하신다.”라고 했습니다. 만유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하신다는 말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드러내도록 작정되었는데, 그 목적에 이를 수 있도록 협력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다 착하시고 지혜롭고 거룩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즉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만물의 존재와 활동에 협력하십니다. 햇빛을 비추고 비를 내리고 바람을 일게 하시며 철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은 다 하나님의 협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만물은 그 존재와 활동에서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4. 그러나 죄를 내시진 않으셨다


하나님의 의지가 만사의 원인이라 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것이든 추상적인 것이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가시적이든 불가시적이든 모두 다 하나님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는 어떻습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작정과 무관하지 않다면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단절시켜 놓고 죽음으로 몰아넣고 지옥의 형벌을 당하게 하는 죄는 어떻습니까? 죄도 분명 하나님의 의지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우연히 전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돌발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결코 죄를 내신 이는 아니시다.”라고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위의 산물은 아닙니다. 무한히 완전하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신다는 것은 불가합니다. 죄는 분명 하나님의 의지를 거역하려는 사탄으로부터 왔고 그 유혹에 넘어간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데는 하나님의 작정이 개입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작정을 흔히 ‘허용적 작정’이라 합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죄의 기원과 관련된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말함으로써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지 않게 하면서도 하나님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에 제공하는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보여주는 범위 안에서 만족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그의 의지의 표현인 성경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VI. 제5조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 자기의 형상대로 지식과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사 생물을 주관하게 하셨으니 세상 모든 사람이 한 근원에서 나왔으므로 다 동포요 형제다.


제5조는 인간 창조에 대한 것입니다. 만사가 다 하나님의 의지의 산물이듯이 인간도 하나님의 의지의 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인간을 만들고 싶으셨습니다. 자기의 형상대로 자기를 꼭 빼닮은 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22) 감히 자기와 견줄 수 있을 만큼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를 만들고 싶으셨습니다.23) 피조물의 면류관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인간 창조가 만물 창조의 꽃이요 절정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 소원이 결국 자기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게 했던 것입니다.


1. 사람을 남녀로 지으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먼저 “남녀로 지으시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애초부터 남자는 남자요 여자는 여자입니다. 성이 다르듯이 특성이 다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성을 뚜렷이 구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운 질서를 무너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동성애가 성적 죄악 중에서 가장 큰 죄악인 것은 그 자체가 사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뿌리째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2.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


“자기의 형상대로”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여기서 말하는 형상은 일차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영은 인격이니 그 형상은 인격적입니다. 성경을 그것을 “지식과 의와 거룩함”이라 했습니다.24) 지식은 선지직과 관련이 있고 의는 왕직과 관련이 있고 그리고 거룩함은 제사장직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식과 거룩과 의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사람을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표현하면 지정의요 미학적으로 표현하면 진선미인 것입니다. 이 형상을 가리켜 흔히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합니다. 그러나 육체도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25) 이 엄밀한 의미의 형상 외에 보다 포괄적 의미의 형상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육체를 포함해서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영성, 도덕성, 통치력, 불멸성 등도 포괄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즉시 잃어버렸습니다.


3. 인간은 모두 동포요 형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보면 인간은 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의 소생입니다.26) 아버지가 한 분이시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모두 형제요 동포입니다.27) 인간의 통일성을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서 찾습니다.


VII. 제6조


우리의 시조가 선악간 택할 자유가 있었는데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보통 생육법에 의하여 출생하는 모든 인종들이 그의 안에서 그의 범죄에 동참하여 타락하였다. 사람은 원죄와 부패한 성품 이외에 범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일부러 짓는 죄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금세와 내세에 하나님의 공평한 진노와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제6조는 인간의 죄와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1. 죄는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시조가 선악간 택할 자유가 있었는데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로봇이나 인형이 아니라 자유의지가 있고 그 의지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전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자기 결정적 존재입니다. 선을 택할 수도 있었고 악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때에도 불가피하게 그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자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선 대신에 악을 택했고 하나님 대신에 사탄을 택했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탄의 말을 택했습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의지를 거역하는 인간의 의지입니다.


2.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보통 생육법에 의하여 출생하는 모든 인종들이 그의 안에서 그의 범죄에 동참하여 타락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조문은 모든 인간은 즉 보통 생육법에 의해서 출행하는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에 동참한 자가 되었고 함께 타락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를 대표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이 비록 아담처럼 죄를 범하지 않았어도 아담과 같은 죄를 지은 공범자로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를 짓기도 전에 이미 죄인이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보통 생육법에 의해서 태어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담 안에서 법적으로 죄인이 되는 이 원리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인의 몸에서 나셨으나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보통 생육법에 의해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특별 생육법에 의해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비록 육신의 몸을 입었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성령님은 마리아의 몸에 예수님의 인성을 잉태케 하셨을 뿐 아니라 죄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잉태와 관련된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입니다.


3. 죄는 원죄와 본죄로 구분된다


신조는 “사람은 원죄와 부패한 성품 이외에 범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일부러 짓는 죄도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인간이 법적으로 죄인이 된 것은 원죄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법적으로 이미 죄인이요 그렇게 때문에 오염되었습니다. 인간이 법률상으로 죄인이 된 것을 ‘죄책’이라 하고 그 죄책의 결과로 더렵혀진 것을 ‘오염’이라 합니다. 원죄는 이 죄책과 오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원죄 때문에 모든 인간은 범죄할 가능성 아래 놓이게 되었고 고의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을 만큼 타락하였습니다. 죄를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하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것입니다. 이 죄를 가리켜 ‘본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구분하면 원죄와 본죄로 나눌 수 있고 죄를 구성하고 있는 두 요소는 죄책과 오염입니다.


4. 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금세와 내세에 하나님의 공평한 진노와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금생에서는 물론 내세에서까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자기의 죄를 속죄하는 길은 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영원히 받는 것입니다. 영원히 진노를 받아야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고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케 됩니다. 그러나 영원히 형벌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따라서 개인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방식으로는 구원의 가망성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개인 속죄 외에 죄인을 대신해서 죗값을 치르는 대리 속죄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이 대리 속죄의 길 외에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비슷한 길도 유사한 길도 없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고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이 한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VIII. 제7조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죄와 부패함과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고 영생을 주시려고 무한하신 사랑으로 그의 영원하신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님으로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이루셨고 또 예수님으로만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 영원한 아들이 참 사람이 되사 그 후로 한 위에 특수한 두 성품이 있어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시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되 죄는 없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복종하시고 몸을 드려 참되고 온전한 제물이 되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시다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신다.


제7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만족케 하시려고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죄인을 구원할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1. 죄인을 구원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죄와 부패함과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고 영생을 주시려고 무한하신 사랑으로 그의 영원하신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라고 말합니다. 죄인이 구원을 얻는 방법에는 대리속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지불할 죗값을 대신 지불하고 형벌을 대신 받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구원의 소극적 요소는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는 일이요 적극적인 요소는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인 속죄를 요구하지 않고 자기 아들을 보내어 대리속죄의 길을 택하신 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고 높고 넓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으로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이루셨고 또 예수님으로만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을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28) 구약의 동물희생도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보여주신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동물희생이 십자가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죽으시려면 죄인과 같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그 영원한 아들이 참 사람이 되사 그 후로 한 위에 특수한 두 성품이 있어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려고 오신 오직 한 사람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29) 하나님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는 참 하나님이셔야 하고 동시에 참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영원한 신성에 인성을 덧입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참 하나님이 되시고 동시에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의 신성은 성부와 같으시고 그의 인성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성질 즉 신성과 인성, 이 양성은 분명히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으십니다.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어 신성도 인성도 아닌 제 삼의 성질로 변하지도 않으십니다. 두 개의 자의식이 있는 신격과 인격, 이 두 인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자의식만 있는 한 인격에 양성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적-인적-인격적이 되셨습니다. 양성은 온전하며 구별되나 한 인격에 통일이 되어 있다는 이 진리 또한 하나님은 본체가 하나이지만 그 한분 본체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가 일체로 계신다는 진리와 함께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 이성에 의한 설득이 아니라 믿음과 성령님의 설득에 의해서 믿어지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4.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므로 죄가 없으시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되 죄는 없는 분이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생육법에 의해서 출생한 자들은 아담 안에서 모두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셨기 때문에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십니다.30) 그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이나31) 죄인의 연약을 체휼하기 위해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32) 시험을 받기도 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33) 우리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나타나셨기 때문에 죄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34)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감옥에서 구출한다면 그것은 출옥(出獄)이 아니라 탈옥(脫獄)이 될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낳으신 영원한 아들이십니다.35) 이 영원한 아들 되심은 성육신 전이나 이후에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령님의 권능으로 마리아의 몸에서 인성을 취하셨을 뿐입니다. 영혼과 육체를 가진 완전한 인성 말입니다.


5. 온전한 제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다


“예수님은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복종하시고 몸을 드려 참되고 온전한 제물이 되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통을 위해서 사람인 아담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 즉 말씀에 무조건적이고도 완전하게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최초로 제시하신 유일한 방법이었고 하나님의 불변성을 생각하면 그 방법은 절대로 취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인이 되기 전이나 죄인이 된 후에나 마찬가집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생명의 교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이 법을 어겼고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 생명의 교통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복종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인 중에는 더 이상 율법의 완전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두가 완전히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엔 무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한 길이 있다면 그 누군가가 죄인을 대신하여 죄인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길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자청하셨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의 요구를 다 지키시고 마지막엔 율법의 요청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죄인을 향한 율법의 요청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요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을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도 만족케 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죄인을 두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갈등을 계속해왔습니다. 공의대로 하면 죽여야 하고 사랑대로 하면 용서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으셨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을 향한 공의를 만족케 하셨고 그 결과 죄인과 생명의 교통을 회복케 하는 길을 열었으니 하나님의 사랑도 만족케 되신 것입니다. 그 만족의 표현이 자기 아들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것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6. 부활과 승천과 재림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시다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보통 사람처럼 자기의 죗값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만족을 선언하신 구속적 사건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인의 죄를 용서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죄인에게 영생과 천국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죄인의 죄를 용서하기는 하셨을지 몰라도 죄인에게 영생과 천국을 기업으로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 후에 승천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 하신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 내게 네게 하라고 준 그 일을 다 이루어 내 영광을 나타낸다면 내가 너를 높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네 앞에 무릎을 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36) 그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동시에 십자가의 희생의 피를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37) 자기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두 가지, 헌제(獻祭)와 대도(代禱)인데, 동정심 많은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그 일을 계속하심으로 속죄의 효력을 영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죄인을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천국으로 데려 가기 위해서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38)


IX. 제8조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신 성령께서는 사람이 구원에 참여하도록 역사하신다. 즉 사람으로 하여금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며 그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 의지를 새롭게 하시사 권하시며 권능을 주어, 복음에 값없이 주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게 하신다. 또 그 안에서 역사하여 모든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제8조는 성령님의 신성과 인격 및 사역에 대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며 구원을 죄인의 마음과 생활에 적용시키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1.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신 성령께서는 사람이 구원에 참여하도록 역사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제8조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객관적인 구원을 죄인의 마음과 생활에 주관적으로 적용시키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십니다. 동방교회는 성부에게서만 나오신다고 믿었으나 서방교회는 아들에게서도(filioque) 나온다고 믿었는데, 이 차이가 동서 로마교회가 갈라지게 되는 신학적 요인 중에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도 하셨고39) 내가 가서 보낼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40)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단지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신성을 가지신 인격자이십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2. 구원을 적용시키는 일은 성령님의 사역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하기에 충족한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하지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인은41) 스스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구원을 자기에게 적용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죄인의 마음과 생활에 적용시켜 줘야만 구원의 효력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구원에 참여하도록 역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변화시켜 심령에 구원을 적용시킵니다. 어떤 과정으로 역사하십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며 그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 의지를 새롭게 하시사 권하시며 권능을 주어, 복음에 값없이 주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게 하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열어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영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죄인의 생활에 역사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구원을 적용시키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흔히 ‘구원의 서정’(序程) 즉 ‘구원의 적용 순서’라 합니다.


X. 제9조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사 사랑하므로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 그리고 그 기쁘신 뜻대로 저희를 미리 작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을 삼으셨다. 이것은 그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저희에게 풍성히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온전한 구원을 값없이 주시려고 이렇게 명하셨다. “너희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 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저희가 받는 바 특별한 유익은 의가 있게 하심과, 양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수에 참여하게 하심과, 성령의 감화로 거룩하게 하심과, 영원한 영광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구원 얻는 줄로 확실히 알 수 있고 기뻐할 것이다. 성령께서 이와 같은 역사를 행하실 때에 은혜 베푸시는 방도는 특별히 성경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제9조는 구원의 적용 순서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구원의 시작이면서 끝입니다. 선택한 자만이 구원의 시작이 일어나고 선택한 자는 반드시 실패하지 않고 최종적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선택 자체가 바로 구원입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예정의 문제인데, 이 예정은 하나님의 작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만사를 절대적 주권에 따라서 작정하시고 예정하십니다. 장차 발생할 일체의 사건을 미리 계획하시고 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우리는 작정이라 합니다. 포괄적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 중에 이 작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것도 작정이 실행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 작정 중에서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계획을 예정이라 하고 그 예정에는 선택과 유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 중에 얼마는 구원하기로 예정하는 것은 선택이요 또 얼마는 버리기로 예정하는 것은 유기(遺棄)입니다.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행위요 사람의 선택이 아닙니다. 예정은 작정의 특수한 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조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저희를 미리 작정하사”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작정’이란 구원의 목적과 그 목적에 이르는 수단도 다 포함되었다는 광의적 의미에서 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신조의 조문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사 사랑하므로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 그리고 그 기쁘신 뜻대로 저희를 미리 작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을 삼으셨다. 이것은 그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저희에게 풍성히 주시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만세 전에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선택의 의미는 사랑입니다. 선택했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예정’ 즉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미리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선택의 내용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기 아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습니다.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런 목적과 그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 이미 만세 전에 정해셨고 그것이 역사 속에서 성령님의 구원의 적용 순서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구원의 적용 과정은 여러 순서가 있다


피택(被擇)된 죄인에게 구원을 적용시키는 과정은 여러 단계(순서)로 나눠지고 이 순서는 교파마다 좀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28-30에서 구원의 적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서 선택된 자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구원의 전 과정을 압축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과정을 일컬어 소위 ‘구원의 황금체인’(The Golden Chain of Salvation/Redemption) 또는 ‘은혜의 황금체인’(The Golden Chain of God's Grace)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련의 구속적 사건이 너무 귀할 뿐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소명과 칭의와 영화의 삼 단계를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소명,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과 영화 9단계로 좀 더 확대시켰습니다. 소명과 칭의 사이에 중생과 회심과 믿음이 있고 칭의와 영화 사이에는 양자와 성화와 견인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표로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을 이룬다. ∵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미리 사랑하신 자들=>미리 정하신 자들

작정 ⊃ 예정 ⊃ 선택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최종적 구원

예수님이 여러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고

궁극적 목표

30

선택

원인

 

영원한 예정

 

구원

결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구원의순서

소명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

 

과거

현재

미래

 

과정

 

발생의 시간적 순서라기보다는 논리적인 순서다. ‘과거’는 동시적일 수 있다.


이 단계들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무 자르듯이 그 과정을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습니다. 이 과정은 시간적 발생순서라기보다는 논리적인 순서일 뿐, 실제로는 여러 과정이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명에서 양자에 이르는 과정은 사람에 따라서는 순간적으로 완성될 수 있고 특히 임종을 맞아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전 과정이 동시에 발생하여 지극히 짧은 순간에 이 모든 과정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구원의 과정의 시작은 소명이요 끝은 영화입니다. 시작은 끝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끝맺음을 안 할 것 같으면 시작도 안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르신 자는 반드시 영화롭게 하십니다. 소명은 하나님의 선택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선택은 원인이요 소명은 그 결과입니다. 예정에서 선택된 자만이 효적적인 소명을 받을 수 있고 그 소명을 받은 자는 반드시 영화에 이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택은 소명만의 선택이 아니라 영화를 포함한 최종적 구원을 전제로 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곧 구원이요 그 구원의 여러 단계의 적용은 일련의 과정인 것입니다. 목표는 과정을 거친 결과로 설정하듯이 구원이란 최종목적은 이런 적용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설정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 구원이란 목표에는 이 과정들이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정을 무시하면 목표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선택에서 실수도 없고 소명에서 실패도 없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자만이 믿을 수 있고 작정된 자는 다 믿는 것입니다.42) 작정이 믿음보다 앞섰습니다. 믿음은 작정의 결과입니다. 구원의 작정은 과거사이지만 그 효력이 영원한 것은 그 작정이 최종적 구원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정에서 영화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동일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소명과 중생을 회심과 믿음보다 앞에 둔다는 것과 성도의 견인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명과 중생은 죄인의 협력을 요구하지 않는 과정이요 회심과 믿음은 죄인의 협력을 요구하는 과정입니다. 죄인의 협력을 요구하지 않는 소명과 중생을 회심과 믿음보다 앞세웠다는 것은 구원의 주도권을 적적으로 하나님께서 쥐고 행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견인(堅忍)은 한번 구원하기로 한 자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구원하신다는 것인데, 개혁주의만이 가지고 있는 신앙입니다.

본 신조에서는 구원의 적용을 두 단계로 즉 소명에서 믿음에 이르는 과정과 칭의에서 영화에 이르는 과정으로 대별(大別)하고 있습니다. 소명에서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온전한 구원을 값없이 주시려고 이렇게 명하셨다. ‘너희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 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선택된 자만이 실제적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명하셨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님일 뿐 아니라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입니다.

칭의에서 영화에 이르는 과정은 “저희가 받는 바 특별한 유익은 의가 있게 하심과, 양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수에 참여하게 하심과, 성령의 감화로 거룩하게 하심과, 영원한 영광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구원 얻는 줄로 확실히 알 수 있고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과는 칭의입니다. 칭의는 죄인을 의롭다고 법정에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선언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과 오염으로 구성되었다 했는데, 칭의에서 제거되는 죄는 죄의 법적 성질인 죄책입니다. 아담 안에서 법적으로 죄인이 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법적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 바로 칭의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칭의는 단회적입니다. 한번 의롭게 됨으로 영원히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성화에서 제거되는 죄는 죄의 도덕적 성질인 ‘오염’입니다. 오염은 도덕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단번에 이루어지는 칭의와 같지 않게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평생이 걸리고 평생이 걸려도 죽음을 전후로 해서만이 완성될 만큼 현재에서는 진행 중일 뿐 불완전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완전 성화는 우리의 목표요 반드시 그 목표에 이르게 될 것이나 세상에서는 불완전합니다.


3.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 두 가지뿐이다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시는 은혜의 방편을 개혁주의는 두 가지만 인정합니다. 곧 말씀과 성례입니다. 그런데 신조에는 “성령께서 이와 같은 역사를 행하실 때에 은혜 베푸시는 방도는 특별히 성경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과 성례와 기도, 이 세 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대소요리문답에서 주기도문을 넣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도를 흔히 은혜의 방편에 넣기도 하지만 요즘은 성화의 방편으로 보고자 합니다. 따라서 개혁주의가 인정하는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 이 두 가지뿐입니다. 말씀이 주 방편이요 성례는 말씀에 종속되었습니다. 따라서 말씀은 성례 없이도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있지만 성례는 말씀 없이는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례는 말씀을 청각보다 더 예민한 미각과 시각에 호소함으로써 말씀을 유형적으로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XI. 제10조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다.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음이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표와 인을 치는 것인데, 성령으로 거듭남과 새롭게 하심과 주님께 속한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와 그들의 자녀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떡과 잔에 참여하는 것이니 믿는 자가 그 죽으심으로 인하여 오는 유익을 받는 것을 인을 쳐서 증거 하는 표이다. 성찬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백성이 행할 것이며, 주님을 믿고 그 속죄를 의지함과 거기서부터 오는 유익을 받음과 더욱 주님을 섬기기로 언약함과 주님과 그의 백성이 서로 교통하는 표이다. 성례의 유익은 성례 자체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성례를 베푸는 자의 덕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다만 그리스도의 복 주심과 또한 믿음으로 성례를 받는 자 가운데 계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다.


제10조는 은혜의 방편인 성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뿐이다


우리의 신조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다.”라고 분명히 두 가지로 못 박았습니다. 성례(聖禮)의 제도는 교회가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성례만이 성례입니다. 구약에는 할례와 유월절이 있었습니다. 이 둘을 대치할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구약 성례가 유혈(流血) 성례인데 반하여 신약 성례는 무혈(無血)성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구약의 유혈 성례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성례는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마교회는 칠성사(七聖事)를 주장하고 있습니다.43)


2. 세례는


세례에 대해서 우리의 신조는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음이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표와 인을 치는 것인데, 성령으로 거듭남과 새롭게 하심과 주님께 속한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와 그들의 자녀들에게 베푸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물을 가지고, 물에 잠그든지 물로 뿌리든지,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는 것인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씻음’의 표시입니다. 이것은 죄 씻음의 표신데, 세례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연합의 표시며 이를 보증하기 위해서 인(印)을 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과 새롭게 하심과 주님께 속한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세례는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와 그들의 자녀들에게만 베푸는 것입니다. 합당하게 안수를 받은 목사만이 줄 수 있습니다. 임종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석(私席)에서의 성례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3. 성찬은


성찬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떡과 잔에 참여하는 것이니 믿는 자가 그 죽으심으로 인하여 오는 유익을 받는 것을 인을 쳐서 증거 하는 표이다. 성찬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백성이 행할 것이며, 주님을 믿고 그 속죄를 의지함과 거기서부터 오는 유익을 받음과 더욱 주님을 섬기기로 언약함과 주님과 그의 백성이 서로 교통하는 표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찬은 일차적으로 떡과 잔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가져온 유익을 인치듯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이행은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의무적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표시요 죽으심의 유익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는 표시며 목숨 받쳐 주님을 섬기기로 하는 서약이요 성도의 일체성과 교통을 표시하기 때문입니다.


4. 성례의 유익은 그리스도의 복 주심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는다


성례의 유익과 효력에 대해서 우리의 신조는 “성례의 유익은 성례 자체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성례를 베푸는 자의 덕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다만 그리스도의 복 주심과 또한 믿음으로 성례를 받는 자 가운데 계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례의 유익은 성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교회는 성찬에 참여하기만 하면 참여자의 믿음이나 영적 상태와는 상관없이 비적적(秘蹟的)으로 은혜를 받는다 말하지만 개혁교회는 성례의 효력은 성례 자체의 무슨 신비한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뿐 아니라 성례를 베푸는 자의 덕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 말합니다. 세례는 목사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좀 더 영력 있어 보이는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농촌 목회를 하던 어떤 여전도사가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면 된다는 생각에 자기도 성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데,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성례의 효력과 유익은 그리스도께서 복을 주시고 성령님이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셔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로 효력이 발생하지만 성찬에 참여하는 자도 역시 ‘믿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도 믿는 자 속에서 믿음과 더불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XII. 제11조


모든 신자의 본분은 입교하여 서로 교제하며 그리스도의 성례와 그 밖의 규례를 지키며 주의 법을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며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주를 경배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선포되는 주의 말씀을 설교함을 자세히 들어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히 베푸신 대로 예물을 드리며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교제하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 세상에 확장되기 위하여 힘쓰며, 주께서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심을 바라고 기다릴 것이다.


제11조는 성도의 교회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객관적인 구원을 죄인의 마음과 생활에 적용시키는 영역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도가 영양분을 섭취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토양입니다. 교회 헌법상으로 교인은 세례를 받고 징계를 받고 있지 않는 상태의 신자를 말합니다. 교인은 권리가 있는가 하면 의무가 있습니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마땅히 행하야 의무 즉 본분이 있는 것입니다. 제11조에서는 그것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1. 모든 신자는 입교하여 서로 교제해야 한다


“모든 신자의 본분은 입교하여 서로 교제하며”라고 했습니다. 입교라는 말은 유아 세례를 받은 자가 성인이 되어 본인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여 법적 교인이 되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세례를 받아 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를 받아 교인이 되어 공동체 일원으로 서로 교제하는 것은 신자의 본분 중에 첫 번째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2. 교회의 법과 성경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례와 그 밖의 규례를 지키며 주의 법을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준법은 시민의 의무입니다. 교인은 교회의 법과 그 법의 원천인 성경의 법을 따르고 복종해야 합니다.


3.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며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주를 경배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선포되는 주의 말씀을 설교함을 자세히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항상 기도해야 하지만 공동체의 모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고 주를 경배하고 말씀을 통해서 새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개인의 경건과 공동체의 생활이 함께 어우러져야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고 너무나 먼 곳입니다. 손잡고 함께 가야 합니다.


4.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히 베푸신 대로 예물을 드리며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교제하고”라고 했습니다. 연보는 예배의 일부분이며 성도의 본분입니다. 예배에서 연보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연보 그 자체가 예배의 중요한 요소요 헌신의 표현입니다. 예배를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 정의할 때에 연보는 그 응답의 아주 중요한 표현 양식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성도들과의 함께 나눠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물을 드리며”라는 말에 이어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교제하고”라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연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성도들과 함께 공유하는 교제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위해서 특별한 예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5.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워 영적 공동체를 이루게 한 것은 서로 협력하여 공동 전선을 형성하여 사탄과 죄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며”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함께 부르심을 받아 운명을 같이 해야 할 군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 세상에 확장되기 위하여 힘쓰며”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온 세상에 확장되어 주님이 주의 주가 되시고 왕의 왕이 되시게 해야 합니다.


6. 재림의 소망을 가져야 한다


“주께서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심을 바라고 기다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 즉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나라는 저곳입니다. 천국입니다. 주님이 계시고 앞서 간 성도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있는 저 언덕 너머, 저 하늘의 예루살렘 곧 장자들의 총회입니다. 그곳으로부터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데리려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고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실 것입니다. 그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종말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역사적 종말도 언제일지 모르나 멀지 않았다 했으니 곧 막이 내릴 것입니다. 그 날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려고 세상에 왔습니다. 천국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취해서 천국을 잊고 사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것은 본분을 망각한 처사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44) 그리 화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XIII. 제12조


죽은 자는 끝 날에 부활하며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이 세상에서 선악간 행한 바를 따라 보응을 받는다.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한 자는 현저히 사함을 얻고 영광 중에 영접을 받는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정죄함을 입어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는다.


제12조는 종말에 대한 신앙입니다. 부활과 심판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성경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종말적 부활과 최후의 심판과 천국입니다. 이 내세에 대한 믿음은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요즘은 천국과 지옥을 부러 잊고 살려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만 저 천국 없으면 “나 어떡하라고?” 천국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모든 것들 다 포기하고 천국에 올인 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는데, 저 천국 없으면 “난 정말 어떻게?” 말짱 도루묵이지 않나요? 기독교는 내세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종말과 내세에 대해서 적어도 다음의 것은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1. 죽은 자의 부활을 믿어야 한다


죽은 자의 부활은 신자나 불신자들이나 마찬가집니다. “죽은 자는 끝 날에 부활하며”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번은 죽지만 그 후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대 앞에 서려면 모든 사람은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자 영화이지만 불신자에겐 영원한 형벌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죄는 영혼만 아니라 육체도 망쳤습니다. 따라서 죄로부터의 구원은 영혼의 구원만 아니라 육체의 구원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부활은 육체의 구원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을 회복할 뿐 아니라 아담이 언약을 이행했으면 도달했을 보다 차원 높은 그 수준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승격되는 것입니다. 요한의 말을 빌리면 주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45) 영혼만 아니라 육체도 말입니다.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고 죽지 않고, 아니, 죽을 수도 없는 몸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2. 최후의 심판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이 세상에서 선악간 행한 바를 따라 보응을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성도들도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간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동기까지 보시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그 배후까지 훤히 알고 계시기 때문에 아주 공정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다 심판할 수 있을까? 심판의 기간이 수백 년 수천 년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방법을 지금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한 순간에 끝날 것입니다.


3. 천국과 지옥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신조는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한 자는 현저히 사함을 얻고 영광 중에 영접을 받는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정죄함을 입어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영광 중에 영접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우리의 신조는 천국과 지옥을 완곡하게 표현하였지만 이것은 분명한 어휘, ‘천국’과 ‘지옥’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구절은 심판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천국과 지옥임에 틀림없습니다. 천국을 점잖게 묘사하고 지옥을 부드럽게 묘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은 더 영광스럽게 지옥은 더 비참하게 표현해도 좋습니다. 요즘은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극단적 용어를 사용하는 데 기피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죄, 형벌, 죽음, 심판, 심지어 피, 속죄, 십자가 등과 같은 어휘들도 점차 사용빈도수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아픕니다. 마음이 아파요. 특히 지옥에 대해서 외면하려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지옥이 없으면 천국도 없는데, 그러면 “난 어케?” 

교파가 다르고 교리가 좀 다르다 하더라도 적어도 육체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이 땅의 신학들도 다 성경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부활과 심판과 천국과 지옥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어휘들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왕 믿는 거, 왜 육체의 부활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까? 육체의 부활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아니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좋은 건데, 왜 그걸 안 믿어요? 믿어야지. 최후의 심판이 없다면 세상에서 악인에게 억울한 일 당하고 손해 본 것 어떻게 보상하라고? 그걸 믿는 게 안 믿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은데, 도적이나 강도나 폭군이 아니라면, 믿어 나쁠 게 없는데, 왜 그것을 안 믿겠다는 건지? 천국과 지옥도 마찬가집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인데, 성경에서 천국과 지옥을 빼면, 아니, 기독교에서 천국과 지옥을 빼면 속빈 강정인데, 그것을 빼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나는 육체의 부활을 믿습니다. 나는 최후의 심판을 믿습니다. 나는 천국과 지옥을 믿습니다. 난 믿을래. 믿고 말고.


XIV. 승 인 서


나는 이 신조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 것으로 믿으며 또한 나의 개인의 신조로 승인합니다.


12신조는 하나님의 영감 된 성경 말씀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신조는 무오(無誤)한 것이 아닙니다. 신조는 축자적(逐字的)으로 영감된 것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작성되었고 그 사상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신조를 단지 공동체의 선언이 아니라 개인의 신조로 승인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신조라도 내가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믿어야 합니다. 믿어야 효력이 발생됩니다. 성령님 또한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46) 사도 신경도 “내가 믿사오며...믿사오니...믿사오며...믿사옵나이다. 아멘”으로 되어 있습니다. 크레도(credo) 즉 “내가” 믿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신앙 고백은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 나오고 ‘내 입술’에서 나온 ‘내 고백’이어야 합니다.47)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라고 고백했습니다.48)



1) “대한예수장로회에서 이 아래 기록한 몇 가지 조목을 목사와 강도사와 장로와 집사로 하여금 승인할 신조로 삼을 때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를 설립한 모(母)교회의 교리적 표준을 버리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찬성함이니 특별히 「웨스트민스터」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와, 성경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한 것인즉 우리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 소요리문답은 더욱 우리 교회 문답책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 ‘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는 ‘Confession of Faith’를 한자(漢字)로 표기한 것인데, ‘게요’(揭要)라는 말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인데, 1920년 대에는 이 말을 요즘의 ‘요약’(要約)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같은 시대에 중국 정치 평론가인 鄭觀應(정관잉) 씨가 쓴 구시개요, 救時揭要라는 책이 있습니다.

2) 여기서 말하는 집사는 안수집사를 가리킵니다.

3) “본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 소요리 문답은 신구약 성경이 교훈 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승낙하십니까?”

4)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1647년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웨스트민서터 총회는 영국과 스코틀랜드 청교도들이 교리적 통일과 개혁파교회의 연결을 도모하기 위해서 1643년 7월 1일부터 1649년 2월 22일까지 약 5년 6개월에 걸쳐, 151명의 회원들이 웨스트민서터대교회에서 모여 무려 1,163회 이상의 정규모임을 가졌습니다. 평신도 회원이 30명, 목사 회원이 121명이었는데, 대부분 장로교회 소속이었습니다(필립 사프, 「신조학」). 이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The Westminster Confession, 39개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Larger Catechism, 196문답)과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 107문답),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Westminster Directory for the Public Worship of God), 그리고 교회정치 등을 작성하였는데, 이 모두가 칼빈주의의 가장 완숙한 표현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신앙고백서는 그 이전에 나왔던 벨직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조 등을 거치면서 칼빈주의 사상이 더욱 완숙해진 시대에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5) [2]  “성경”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오늘 날 신구약 성경의 모든 책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

※구약 성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기상, 역대기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 성경※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 일서, 요한 이서, 요한 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6) 고전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 딤전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8) 딤전 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9) 신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0)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11) 신4:39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12)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13) 사45: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14)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15) 렘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16)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17) 삿8:21 세바와 살문나가 가로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대저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기드온이 일어나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 약대 목에 꾸몄던 새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니라

18) 시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19) 시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20)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21)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2)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3) 시8:5 저를 천사(=>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24)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25)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26) 행17: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27) 말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28)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29)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30)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31)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롬8: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33)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34) 요일3: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35) 시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36)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37)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38)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39)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40)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41)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42)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3) 영세 성사(領洗聖事), 견진 성사(堅振聖事), 성체 성사(聖體聖事), 고백 성사(告白聖事), 종부 성사(終傅聖事, ‘病者 성사’), 신품 성사(神品聖事), 혼배 성사(婚配聖事, ‘혼인 성사’)

44)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45)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46)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47)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48)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글쓴 이; 오요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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